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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세이

변하지 않은 것, 변한 것

[타인의 이해] 2. 없다. 가해자다움도 피해자다움도

 

 

 

#변하지 않은 것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성추행으로 대표직을 물러났고, 당적도 박탈당했다. 피해자는 같은 당 장혜영 국회의원이었다. 남성이 여성을 성추행했다. 변하지 않은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나이 든 중년 남성 권력자가 나이 어린 여성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성범죄 때도 있었던 일이다.

 

#변한 것

김종철 전 대표는 자신의 가해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물러났다. 이건 ‘잘한 일’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이 당연한 걸 그간 보기 어려웠다. 안희정은 부인했고, 박원순은 도망쳤다. 이들을 비호하는 이들은 피해자를 ‘꽃뱀’ ‘피해호소인’ 따위로 부르며 2차 3차 4차… 가해를 이어갔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 김종철은 그러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것

성범죄를 바라보는 어떤 시선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김종철 성추행을 다룬 기사에선 ‘페미’ ‘메갈’ 운운하며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그가 속한 정당을 욕하는 댓글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피해자가 용기 내어 피해를 내보이고, 가해자가 가해를 인정해도 또 다른 가해는 계속된다.

 

#변한 것

성범죄를 대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태도가 변했다. 이 당의 수석대변인 최인호는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며 “정의당은 발표한 것처럼 이 사건을 무관용의 원칙으로 조치를 취해야 하며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냈다.

 

자신들의 당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에 미적대고 쉬쉬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추가 가해를 하던 모습과 달라진 모습이었다. ‘충격’과 ‘경악’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정의당을 비난한 것은 그게 정말 충격이고 경악할 만한 일이어서라기보다는, 마치 ‘너희들 우리한테 문제 있을 때마다 욕했지? 너네도 똑같이 당해봐라’ 하는 것처럼만 보였다.

 

비판이 쏟아지고, 마침 박원순 성범죄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결과가 나오자 최 대변인은 뒤늦게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희롱 등에 관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피해자와 가족들께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변하지 않은 것

사실 이 같은 여당의 모습은 ‘자신들에 관대하고 남에겐 가차 없는’ 내로남불이란 점에서 딱히 변한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당에 권인숙 의원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권인숙 의원은 “정의당 사건에 대해 민주당에서 발표한 입장문은 사실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했다”며 “민주당도 같은 문제와 과제를 안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충격과 경악이라며 남이 겪은 문제인 듯 타자화하는 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변한 것

이제 더는 ‘그 사람이 그랬을 리 없어’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안희정, 박원순 성범죄 당시만 해도 ‘설마…’ ‘그럴 리 없어’ ‘제발 아니길’ 하고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더는 그러지 않는다. 그가 평소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업적을 이뤘든 ‘성범죄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면 안 되듯, ‘가해자다움’을 핑계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줘선 안 될 것이다. 더 시급한 일은 용기 낸 피해자를 지지하고 그가 적절한 경로를 통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연대하는 일이다.

 

아울러 나 스스로를 확신하지 않기로 했다. ‘저들은 위선적인 사람이고, 나는 절대 안 그래’라는 말만큼 무의미한 말은 없다. 세상에도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럴 수도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예방에 나을 것이다. 부단히 그렇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부단히 다잡아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말

 

'다움'에서 벗어날 수 있길 바랍니다.

여자다움, 남자다움, 피해자다움, 가해자다움, 다움 다움 다움...